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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그 날과 그 시간

by 분당교회 2013. 12. 2.

그 날과 그 시간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2월 01일 대림1주일 설교 말씀)


미래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시계바늘이 돌아가면 자연히 닿는 때입니다.(future) 다른 하나는 오고 있는 시간을 말합니다.(advent) 마치 아버지가 선물 또는 심판을 주러 아들에게 다가오듯이 ‘오고 있는’ 시간을 말합니다. 우리 인생과 역사에 의미가 있는 것은 바로 후자의 미래를 생각하고 기다리고 준비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만일 동물처럼 작용과 반작용의 굴레에 머물고 시간의 흐름에 떠밀려 산다고 하면 그 사람은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숨 쉬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인생과 역사에 하느님이 정하신 종착지가 있고 목표가 있기에 그 방향을 찾고 어렵더라도 그 길을 가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그저 끝나기만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구원의 과정이고 하느님이 이루시려는 그 나라를 성취하는 역사라고 할 때 비로소 이 세계사는 구원사로서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서 희망을 가지고 오늘을 살게 됩니다. 미래에 대한 기다림과 희망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젊어도 다 산 사람입니다. 반면에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미래가 있고 기다림이 있는 사람은 싱싱한 푸르름이 있고, 원숙하고 향기로운 꽃을 피울 줄 압니다. 

기다리는 대상이 있고, 기다리는 때가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오늘을 참아내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새로운 세계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과정에 있음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단지 ‘죽음에 이르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된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이에 대해 응답하는 사람들이고 그 날과 그 시간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 둘 것이다. ... 너희의 주인이 언제 올는지 모르니 깨어 있어라.”

종말의 때는 저절로 시간이 흘러가서 막다른 곳에 다다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오시는 때가 바로 종말이고 심판의 때입니다. 그러니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도 오시고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다가오는 심판과 구원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보며 일상생활에 젖어 잠들어 있는 우리의 영혼을 깨워야 합니다. 죽은 물고기가 구정물이든 흙탕물이든 어느 곳이나 흘러가듯이 떠밀려 가는 것이 아니라, 거치른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부터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교회력으로 보면 한 해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대림절은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기간이라 할 수 있는데, 한 해의 시작을 성탄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대림절부터 시작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 날을 위해 준비하고 기다리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말해주고 있습니다. 준비 없이 맞이하는 것은 잠든 상태에서 주인을 맞이하는 종과 같기 때문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여우와 만남을 약속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오는 게 좋을 거야. 가령, 네가 항상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그리고 4시가 다가오면 나는 점점 더 행복 해질 거야. 그러다가 4시가 되면 나는 안절부절 못하면서 뛰어 다닐 거야. 그 때 내가 얼마나 기쁜지를 너에게 보여줄게.”

예수님 오시는 그 시간을 미리 안다면 이렇게 몇 시간 먼저 행복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알 수가 없으니... 하지만 차라리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그리고 행복하게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림과 준비하고 있게 될 것입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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