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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왕이신 그리스도

by 푸드라이터 2013. 11. 25.

왕이신 그리스도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1월 24일 연중 34주일 설교 말씀)


그리스도라는 말에는 세 가지 직분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하느님께 제사를 드림으로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사제직입니다. 둘째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의 직분이고, 셋째는 하느님의 권능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왕으로서의 역할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과 제사로서 우리에게 영적이고 도덕적인 변화와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이와 동시에 왕으로서 세상의 생활 모두를 관장하심을 우리는 고백합니다. 오늘은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을 영접하는 날로서 올 해 교회력을 완성하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세상의 통치자로서 맞이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이 그리스도께서 친히 보여주시고 당부하신 새 계명대로 살겠다는 약속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교회의 예배나 말씀을 통한 영적인 생활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생활 모두를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법칙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서에서는 왕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조롱하며 빈정거리면서 왕이라 칭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겨서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남들을 살렸으니 정말 하느님께서 택하신 그리스도라면 어디 자기도 살려 보라지!’하고 조롱합니다. 십자가 위에 달린 ‘유다인의 왕’이라는 팻말은 예수님의 죄목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 - 브뤼겔


세상은 예수님을 이토록 조롱과 핍박의 대상으로 맞이했습니다. 이는 어쩌면 진리와 사랑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당연한 태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질과 권력을 지향하고 그것에 인생에 목적을 둔 사람들이라면 구원이라는 말조차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아예 필요치 않는 인생관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들 모두를 용서하십니다.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용서의 왕이십니다. 한없는 자비심으로 원수조차도 사랑과 용서로 품어주시는 왕이십니다. 차가운 칼이나 법률이 아니라 자비심으로 섬기고 용서하심으로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는 자비심이 사라지거나 메말랐습니다. 자비심이 사라졌기에 용서가 없습니다.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이탈하거나 낙오하면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됩니다. 잠시의 실수도 용서가 없기에 각박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한 친구에 대해 난 생각한다. 어느 날 나는 그와 함께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손님으로 만원이었다. 주문한 음식이 늦어지자 친구는 여종업원을 불러 호통을 쳤다. 무시를 당한 여종업원은 눈물을 글썽이며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난 지금 그 친구의 무덤 앞에 서 있다.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한 것이 불과 한 달 전이었는데 그는 이제 땅 속에 누워있다. 그런데 그 10분 때문에 그토록 화를 내다니...”(‘17세기 막스 에르만의 시’, 류시화의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에서)

이렇게 야박하고 냉정한 이야기나 장면들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흔하게 있는 일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기도 모자란 인생인데 우리는 너무나 자비심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중에 하느님 앞에 가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예수님 옆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간청했습니다.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아마도 이 한 마디는 우리가 평생을 두고 예수님께 간청해야 할 기도의 제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야 말로 용서받아야 할 죄인임을 고백할 줄 아는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왕으로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화답하십니다.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듣는 이 한 마디는 얼마나 큰 위로와 희망을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 한 마디를 듣기 위해서 평생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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