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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성공회 인물 시리즈 : 조셉 버틀러(Joseph Butler 1692-1752): 이성으로 이성주의와 맞선 주교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1. 5.

얼마 전 교황이 영국을 방문해서 시성(諡聖)한 인물이 존 헨리 뉴먼인데 그 뉴먼이 “성공회의 가장 큰 이름”이라고 격찬한 인물이 조셉 버틀러 주교입니다. 그가 세상을 뜰 무렵, 그러니까 150~60년 전만 해도 성직을 지망하는 사람한테 필독서 중 하나가 버틀러가 쓴 「종교의 유비」(The Analogy of Religion)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유행이 달라서 버틀러처럼 신학이나 윤리를 지독히 이성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는 접근방식이 그닥 인기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성공회 신자라도 낯설게 들리는 이름이 되고 만 듯합니다.

사실 버틀러가 살았던 18세기는 그야말로 이성의 세기였습니다. 2세기 전 16세기에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성서를 읽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공회의 리차드 후커는 성서, 전통과 더불어 신앙의 한 축으로 이성을 말했습니다. 한국의 성공회도 곧잘 “성공회는 이성적인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들도 18세기의 이성주의와 맞닥뜨리면 지나치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이성주의 시대의 신론을 ‘이신론’(理神論 Deism)이라고 하지요. 이 관점에 따르면 지고한 신이 있어 미덕은 상 주지만 사악은 벌을 주며 인간이 이성으로 잘 따져보면 그러한 신이 있음을 알 수 있다는 식입니다. 머리형 인간들에게 신을 믿는 신앙을 변호하고 설득하긴 어떨지 모르나 한편으로는 성서나 계시 없이도 신을 알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당대의 사람들은 「신비로울 것 없는 그리스도교」(Christianity Not Mysterious) 같은 책을 읽었습니다. 몰라서 신비지 알면 신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가르침에서 이성에 반하는 내용은 배척을 당하는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버틀러는 태어났습니다. 원래 그의 부모는 장로교인이었으나 버틀러는 젊은 나이에 성공회로 전향해 신부가 되고 빼어난 설교가로 이름을 날립니다. 하지만 그는 천성이 처박혀 책에 파묻히기 좋아하는 터라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단순하고 금욕적인 삶을 삽니다. 그런 버틀러가 브리스톨의 주교로, 죽기 2년 전에는 더햄의 주교로 봉사했다는 사실은 좀 뜻밖입니다. 왜냐하면 버틀러는 평생 이성을 내세우는 불신자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성과 모순되지 않음을 밝히는 소명으로 살았다 할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1726년에 낸 「열 다섯 개 설교」(Fifteen Sermons)는 오늘날도 윤리철학 분야에서는 명저로 꼽힌다고 합니다. 버틀러보다 한 세기 전에 산 토마스 홉즈는 모든 인간행동이 이기심을 동기로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버틀러는 자기를 넘어서는 초월적 동기가 오히려 인간을 이끄는 것이라 했습니다. 인간은 옳고 그름을 선험적으로 알며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서 지고의 행복을 발견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버틀러는 과학주의와 상업적 부를 추구하는 당대를 향해 이성적으로 봐도 인간은 그 이상을 추구하는 존재가 맞다고 논리의 예봉을 겨룬 사람입니다. 마치 머리로 헤아려 신앙을 비웃는 사람들을 향해 제대로 머리를 굴려 논리의 끝까지 가보면 인간은 지식의 한계를 자인하고 불가해의 신비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식입니다. 사람들이 이성의 이름으로 계시를 비웃는 것을 뒤집어 사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성적이라는 논증을 펼친 사람이 버틀러입니다.

영지주의와 맞선 요한복음이 가장 영지주의적 톤을 갖듯이 버틀러의 저술 또한 그가 맞선 이성주의자와 이신론자들을 닮았습니다. 그도 경험과 인격적 관계성의 언어보다는 진리와 신성 같은 추상적 개념을 논하면서 경쟁했습니다. 버틀러에 관한 유명한 일화는 존 웨슬리와 관련된 것입니다. 당시 브리스톨의 주교였던 버틀러는 우연히 광장에서 광부들을 상대로 설교하는 웨슬리와 맞닥뜨립니다. 웨슬리는 담대하게 자신이 성령의 감화를 입었다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버틀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초자연적인 성령의 계시와 선물을 받았다고 자처하다니 이건 끔찍한 일이오!” 그리고는 브리스톨의 주교로서 자기 관면도 받지 않고 멋대로 설교하는 것은 잘못이니 떠나라고 했다지요. 자로 잰 듯한 논리적 사상가인 버틀러로서는 열광적인 감정에 호소하는 웨슬리의 영성이 그저 경각심만 자극했을 법합니다.

하지만 조셉 버틀러는 성공회로서는 어느 시대에나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성공회풍의 대변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성에 준하여 그리스도교 신앙과 복음을 자신이 사는 시대에 걸맞게 재해석하고 진술하는 풍모 말입니다. 물론 세계대전과 학살, 환경파괴를 경험하며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깊이 실망하는 현대인이 버틀러 시대와 같이 인간 이성을 신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도 신앙을 의미 있게 말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소중하고 그런 의미에서 신앙적 이성을 늘 소중히 여기는 성공회풍은 귀한 전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감정에 호소하며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복음주의, 성례전과 관상적 전통을 중시하는 앵글로가톨릭주의와 더불어 이성적이며 당대의 학문과 대화하려는 자유주의 전통은 늘 성공회의 소중한 단층이었습니다. 버틀러는 그 이성적 단층을 빛나게 한 성공회의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버틀러를 읽노라니 우리는 교회 안팎의 어설픈 이신론과 이성주의적 태도에 얼마나 깊이 있게 신학적으로 응대하고 있는지 새삼 궁금해집니다. 성공회를 이성적인 교회라고 쉽게 말하곤 하는데 이신론 이상의 깊이는 있는지, 또 얼마나 이성적 콘텐츠를 마련하고 하는 말인지 갑자기 자신이 없어집니다. (이주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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