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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대림공동체의 영성

by 분당교회 2017. 12. 18.

2017년 12월 17 설교말씀

성공회 분당교회 김장환 엘리야 신부

요한 1:6-8, 19-28


대림공동체의 영성


맹추위가 계속 되고 있고 오늘도 무척 추운데, 함께 예배를 드림에 감사드립니다. 사제회장님 부부는 지난주일 눈이 많이 와서 못 오셨는데 너무 반갑습니다. 어느덧 3대림 3주일입니다. 불과 일주일 후가 성탄절입니다. 전통적으로 성탄 전례는 성탄 전일에 노래로 드리는 저녁기도와 성탄 밤 성찬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사이에는 축하잔치 등을 하지요. 


그런데 올 해는 성탄 전일이 대림 4주일이어 오전에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저녁에는 성탄 전야 전례를 갖고 바로 다음 날 성탄절 예배를 드리게 되어 고민했습니다. 물론 예배를 드림이 기쁨이지만, 추운 날씨에 먼 거리에서 오시는 어르신들이 많으셔서요. 어떤 교회는 성탄 전날 밤 전례를 다 생략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제가 보수적이어서 그런지 전례에 따라 저녁 6시에 성탄 망일 노래만도, 7시에 성탄밤 성찬예배를 봉헌합니다. 


무리하지는 마세요. 중심은 주일예배와 성탄절예배입니다. 두 예배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25일 성탄절예배에는 가족 모두와 함께 오시길 바랍니다. 축하잔치도 성탄절예배 후에 가지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싶은 분들은 윤지상 요한 위원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많이 참여하셔서 즐겁고 풍성한 성탄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성경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성경을 읽는 원칙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한국교회에 큐티가 보급되면서 성경을 개인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물론 중요하고 귀한 일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본래 개인이 아닌 공동체에 주신 말씀들입니다. 오늘 1독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2독서는 테살로니카 교회에, 그리고 복음은 요한공동체에 주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공동체가 함께 읽고 함께 묵상하는 가운데, 적용점을 찾아 함께 순종해야 합니다. 대림절아침기도 시간에 복음을 읽고 묵상 나눔을 갖는데,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소그룹으로 모여 꾸준히 묵상과 나눔을 하고, 기도 가운데 삶에 적용해가면 예수님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들도 그런 관점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서신 23절과 24절 말씀이 교회를 향한 말씀으로 읽혀졌습니다. 23절을 읽습니다.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온전히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시기를 빕니다. 또 여러분의 심령과 영혼과 육체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완전하고 흠 없게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이 말씀을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평화의 하느님께서 성공회분당교회를 온전히 거룩한 교회로 만들어주시기를 빕니다. 또 우리 교회의 모든 지체 한 사람 한 사람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완전하고 흠 없게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우리 성공회 분당교회가 주님 보시기에, 온전히 거룩한 교회로 우뚝 세워지기를,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두 완전하고 흠 없는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 일은 우리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는 할 수 없기에 주님이 도와주시겠다고 격려하십니다. 24절입니다. “여러분을 불러주신 분은 진실하셔서 이 일을 다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다시 이렇게 읽습니다. “성공회 분당교회를 세워주신 분은 진실하셔서 이 일을 다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이런 기대감을 마음에 품고 오늘 복음을 읽으니, 세례 요한의 이야기도 교회를 향한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6-8절을 읽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그 빛을 증언하러 왔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증언을 듣고 믿게 하려고 온 것이다. 그는 빛이 아니라 다만 그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이렇게 읽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있는데, 그 이름은 성공회 분당교회이다. 그 교회는 주님을 증언하라고 세워졌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증언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하려고 세워진 것이다. 교회는 빛이 아니지만, 그 빛을 증언하는 공동체이다.”

  

분당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목적, 교회의 사명을 알게 됩니다. 우리들이 여기에 모인 이유가 분명합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 대림, 그 날이 속히 오도록 힘써야 하는 교회로서, “복음을 증언하는 온전히 거룩한 성공회 분당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증언”해야 합니다. 말로 하는 전도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성프란시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항상 복음을 전파하라. 필요한 경우에는 언어를 사용하라. 우리의 걸음과 삶이 복음이 되지 않는다면, 입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무익하다.” 복음을 증언하는 일은 삶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거룩한”이라는 말도 삶을 표현하는 단어로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전히 거룩한 삶이 복음을 증언하는 삶입니다. 거룩한 삶이 어떤 모습인지 오늘 서신이 말해줍니다. 살전 5:16-1, ”16 항상 기뻐하십시오. 17 늘 기도하십시오. 18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이런 삶을 살도록 하는 영적인 힘을 영성이라고 합니다. 영성이란 하느님과 어떤 관계로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지난주일 들었던 대림절 특강의 내용이 기억났습니다. 깨어 있음 – 일상의 영성! 어떤 내용인지 기억하시는지요? “일상의 영성은 향유의 영성, 노동의 영성, 자족의 영성, 그리고 연대의 영성으로 사는 것이다.” 


제일 좋은 학습법은 반복이라고 하죠? 그래서 오늘 저는 “복음을 증언하는 온전히 거룩한 공동체”가 되도록 하는 서신의 말씀을 대림 특강의 내용과 연결하여 다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항상 기뻐하십시오 - 향유의 영성입니다. 

향유의 영성이란 내가 만나는 사람들, 사건들, 사물들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두 주 전 설교 때 나누었던 톨스토이의 단편 “세 가지 질문” 기억하시나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은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옆에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선을 행하는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 혹 사건이나 사물을 주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받아들이고 환대하고 기뻐하는 것을 말합니다. 환대하고 기뻐하는 것이 그것을 허락하신 하느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자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당 홀에 핀 꽃을 봅니다. 얼마나 화사하고 예쁜지요? 저는 매일 그 꽃을 보며 기뻐합니다. 이 기쁨은 꽃과 화초를 돌보시는 암브로스님, 조교이신 이미카엘라님께 드리는 찬사요 꽃을 만드신 하느님께 올리는 찬양입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만나는 것 등등 우리 삶에는 향유하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순간순간이 모여 영원이 되듯이, 작은 기쁨들이 모여 행복을 이룹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가 됩니다. 우리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며 서로 기뻐합시다. 복음을 증언하는 온전히 거룩한 공동체로 우뚝 설 것입니다.



2.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 자족의 영성입니다.

자족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소유의 자족”“존재의 자족”입니다. 우리가 자족하기 힘든 이유는 남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비교하면 낙심하거나 불평하게 됩니다. 남과 비교하는 것은 반예배입니다. 


소유의 자족을 가능하게 하는 고백이 있습니다. “난 충분해!”입니다. “난 충분해!”라는 말이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고백입니다. 소비가 미덕이라고 부추기는 물질주의사회를 이기게 하는 힘입니다


소유의 자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존재의 자족”입니다. 존재의 자족은 나의 정체성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 된 특별한 존재입니다. 하느님은 나를 자녀 삼으시고자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우리 각 사람의 존재 가치는 예수님짜리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느님을 한 분 아버지로 모신 가족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필립비 4장 11절에서 “나는 어떤 처지에서든지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선포합니다.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 존재임을 알기에 이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 한 분으로 만족했습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했습니다.  


성탄의 신비는 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예수 성탄과 성탄의 마침표인 십자가를 묵상하면, 내 존재와 그의 피 값으로 세워진 교회에 대해 감사하게 됩니다. 지금 나의 삶에 자족하며 하느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나를 온전히 거룩하게 변화시킵니다. 


3. 늘 기도하십시오 - 노동의 영성과 연대의 영성입니다. 

1) 노동의 영성

노동에는 먹고 살기 위한 수고와 관계의 수고 두 가지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노동해야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이 노동에는 너무 많은 수고가 따릅니다. 항상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서도 노동은 계속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동을 불가피한 고통으로 여기는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두 청소부의 이야기를 아실 겁니다. 한 청소부는 “내가 언제까지 쓰레기를 치우고 빗질을 해야 하는가?” 불평합니다. 다른 청소부는 “나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지구의 한 구석을 책임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후자의 고백이 나오도록 하는 힘은 기도에서 가능합니다. 우리의 몸으로 수고하는 모든 노동은 하느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됩니다.


관계의 수고도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입니다. 거의 해산의 수고와 맞먹습니다. 용서하는 일, 용납하는 일은 사람을 품는 일이며, 마침내 자유롭게 내어 풀어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 관계의 수고입니다. 


기도가 노동의 영성을 살아가도록 하는 원천입니다. 그래서 성베네딕트는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이라고 말했습니다. 


2) 연대의 영성

신앙은 연대하는 삶입니다. 몇 주 전 보았던 최후의 심판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너희가 여기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주린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 된 사람,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 등 고난 받는 가난한 이웃과 연대하는 것이 구원의 근거입니다. 


오늘 1독서에 나오는 말씀도 동일한 내용입니다. 이사야 61:1, 주 야훼의 영을 내려주시며 야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고 나를 보내시며 이르셨다. "억눌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찢긴 마음을 싸매 주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려라. 옥에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 억눌린 자, 찢긴 마음의 사람, 포로와 옥에 갇힌 자와 연대하라는 말씀입니다. 


루가 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메시야의 사명이 바로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입니다. 


교회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낮은 마음으로 성탄하신 예수님을 따라, 낮은 마음으로 가난한 이웃과 연대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은 주님과 깊은 친교의 기도로 살아가는 사람의 살에서 보이는 거룩함입니다.


향유의 영성으로 항상 기뻐하십시오.

자족의 영성으로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노동의 영성, 연대의 영성으로 늘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우리 분당교회가 “복음을 증언하는 온전히 거룩한 공동체”로 우뚝 서서,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그 날이 속히 오도록 힘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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