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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제자를 넘어 사도적 삶으로!

by 분당교회 2017. 6. 18.

2017년 6월 18일 가해 연중 11주일 설교말씀

성공회 분당교회 김장환 엘리야 신부

마태 9:35-10:8


제자를 넘어 사도적 삶으로!


1. 오늘 복음에 이상한 표현이 나옵니다. 10장 1절에는 12제자라고 하는데, 10장 2절에서 12사도로 표현이 바뀌는 것입니다. 동일한 12명에게 다른 표현을 사용한 것에는 의도가 있는 것이죠. 연결되는 단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자에는 ‘불러’(10:1)가 연결되고 사도에는 ‘가서’(10:7)가 연결됩니다. 


2. 제자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님과 함께 지내는 사람입니다. 주님과 함께 지내면서 하느님과 하느님의 나라를 알아 가며 작은 예수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사도란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 선교를 위해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은 제자들을 말합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들은 제자로, 사도로 이중적인 정체성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3. 사도라는 정체성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매주일 니케아신경에 드리며교회에 대한 고백을 이렇게 합니다. “하나이요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공교회!” 여기서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이라는 말은 ‘사도적 교훈’‘사도적 사역’을 계승해야 올바른 교회라는 말입니다. 


4. 사도적 교훈이란 초대교회로부터 정리되어 온 신앙 고백에 담겨 있습니다. 그 핵심은 지난 주일에 살펴본 예수님의 삶과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경강림사건을 경험하면서 정립된 삼위일체신앙입니다. 사도적 사역이란, 초대교회가 계승한 예수님의 사역을 말합니다.



5. 예수님 사역의 중심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고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하느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 것인지를 가르치셨습니다. 병자들을 고쳐주시면서 이 땅에 임하는 하느님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마태 9:35,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가시는 곳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다. - 이를 단순하게 전도, 양육, 봉사로 표현합니다.


6. 사도들과 초대교회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시고자 행하신 전도와 양육과 봉사를 계승하면서 헌신했습니다. 전도, 양육, 봉사를 오늘날 우리 성공회 버전으로 표현한 것이 선교정신 5Marks입니다. 


7. 첫 번째 선교정신인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한다.” 전도입니다.  “새 신자를 가르치고 세례 주고, 양육한다.” 교육입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지표, “사랑의 섬김으로 이웃의 필요에 응답합니다.” “불의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하며 지구생명의 회복과 유지에 헌신합니다.” 봉사입니다.


8. 그런데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는 사도적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내적 요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니셨던 시선과 마음입니다. 오늘 복음 36절을 보면,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막연하게 보는 것이 아닌 ‘깊이 보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한 채, 빵과 기적만을 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진정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입니다. 


9. 엠마우스 2과 ‘우리 삶에 필요한 하느님’을 보면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도록 던지는 3가지 질문이 나옵니다. “어떤 목적으로 살아가십니까?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안을 유지할 수 있으십니까?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며 살아가시나요?” 새로운 인생의 목표와 내적 평안, 그리고 사랑은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구원의 은총입니다. 


10.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공허한 마음으로 방황하는 군중들을 보신 예수님의 마음은 ‘불쌍한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주님의 이 마음은 측은지심, 애끓는 마음입니다. 영어로 compassion이라고 하는 ‘함께 아파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바라보며 이런 마음을 지니셨던 적이 있는지요? 


11. 지난 주간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일어난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음악을 틀고 아파트 외벽 공사를 하던 사람의 밧줄을 시끄럽다고 끊어버려 죽게 만든 사건입니다. 죽은 분이 아내와 5명의 자녀가 있는 사람이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 지요? 


12. 그런데 밧줄을 끊어버린 사람도 너무나 불쌍했습니다.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행동을 한 그 사람이 하느님을 알았다면, 하느님의 사랑으로 그 빈 마음을 채울 수 있었다면, 비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힘든 삶이지만 하느님 안에서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했다면 그런 행동까지 하지 않았을텐데요. 얼마나 안타깝고 불쌍한 인생인지요. 


13. 주님의 시선, 주님의 마음과 함께 사도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또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능력입니다. 오늘 복음 10장 1절을 보니까 예수님이 12제자에게 ‘악령들을 제어하고 병자들을 고쳐주는 권능을 주셨다’고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권능입니다. 


14. 하느님을 무시하고 하느님이 아닌 것들, 쾌락이나 명예나 권력 그리고 돈을 삶의 목적과 사는 의미로 삼게 하는 이 시대의 악한 어둠의 권세를 분별하고 이겨내는 능력! 정신과 육체가 병들어 신음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길 수 있는 능력! 하느님은 고림도전서 4장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우리에게 이 능력이 필요합니다. 


15.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시선, 주님의 마음, 주님의 능력을 내적으로 가득 채우고 있을 때에만 사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관건은 어떻게 내 안에 이것들을 충만케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제자가 어떤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제자란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주님과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16.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란 한 마디로 예배자의 삶입니다. 예배는 하느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주일감사성찬예배를 드리며 구원의 은총에 감사와 사랑을 고백합니다. 성체와 보혈을 먹고 마시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채워갑니다. 또한 일상의 삶에서 말씀묵상과 기도로 주님과 함께하는 개인예배가 중요합니다. 예배는 내 삶에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 주님의 시선과 주님의 마음, 주님의 능력이 채워집니다. 


17. 제자로 살기 위해서 한 가지 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성경으로 양육 받는 제자훈련입니다. 제자-Disciple, 훈련-Discipline. 디모데후서 3장 16절 1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6 성경은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 데 유익한 책입니다. 17 이 책으로 하느님의 일꾼은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과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17절의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하느님의 일꾼’이 사도입니다. 이를 위해서 성경으로 제자 훈련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18. 그래서 엠마우스 공동양육을 시작했습니다. 엠마우스는 쇠퇴하던 영국성공회가 전도와 제자훈련을 위해서 만들어낸 것으로, 대한성공회가 3년 전부터 실시하고 있는 양육과정입니다. 접촉-양육-성장 3단계로 되어 있는데, 전 과정을 다 마치려면 3-4년이 걸립니다. 


19. 현재 우리교회에서 시작한 것은 양육단계인 ‘믿음의 길’입니다. 금요일 오전반 오후반에 18분이나 참여하고 계십니다. 열심히 참여해 주셔서 얼마나 기쁜지요? 금요일에 시간이 어려운 교우들을 위해서 목요일 저녁반을 이번 주에 개강합니다. 목요일 저녁반에 2명이 신청하셨는데 다 많은 분의 참석을 기다립니다. 혹 목요일 저녁에도 시간이 안 되는 분은 어려워 마시고 말씀해 주십니다. 일대일이라도, 새벽이든 한 밤중이든,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20. 마지막으로 설교를 준비하면서 오늘 복음 말씀에 선뜻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5절, 6절에 나오는 ‘이스라엘에게만 가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이 지난 주일에 읽은 복음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28:19-20,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21. ‘세상 모든 사람들’을 복음화하기 위하여 전략적으로 먼저 이스라엘을 복음화 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도전이 있었습니다. 자기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갈 수 있을 때 사도적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란 내 가족, 내 친구, 내 직장 동료, 내 이웃 등이 있는 내 일상의 삶의 자리를 말하는 것 아닐까요? 내 일상, 삶의 자리에서 내가 주님의 제자로 신뢰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세상 모든 사람들을 제자 삼는 사도적인 삶을 살아낼 수 있겠습니까?


22.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으로 아파하셨던 예수님은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고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예수님은 애끓는 마음으로 이 땅을 보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사랑,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당장은 내 가족, 친구들부터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적 삶으로 복음을 전할 사람들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23. 우리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분이 50여명입니다.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닙니다. 주님은 12제자를 사도로 보내시면서 하느님 나라 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추수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제자로서의 삶에 집중하기를 바랍니다. 


24. 주일감사성찬예배와 묵상과 기도로 드리는 개인예배를 우선순위에 두십시오. 예배자로 살아가십시오. 제자로 자라나기 위한 양육에 참여하십시오. 그러면 서서히 주님의 시선, 주님의 마음, 주님의 능력으로 충만한 주님의 제자가 되어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사도들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진정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주님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간절한 기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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