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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성공회 인물시리즈 : 제레미 테일러(Jeremy Taylor 1613-1667): 왕정의 옹호자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1. 5.


제레미 테일러는 잘생기고 똑똑하며 말과 글이 빼어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성격도 너그럽고 가족을 사랑했고 하느님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니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그도 개인사의 비극을 많이 겪었고 당대 정치 종교적 격변을 피해가지는 못했습니다. 생전에 수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건만 객지에서 슬픔의 생을 마쳐야 했던 인물이 테일러입니다. 런던 성 바울로 대성당에 강연을 하기로 한 사람이 갑자기 못 오게 되자 갓 서품 받은 젊은 테일러가 대타를 하게된 것이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된 계기였다고 합니다. 젊은 사람이 대단히 설교를 잘하더라는 평판을 듣고 당시 켄터베리 대주교인 윌리엄 러드(William Laud)는 늘 제대로된 성직자를 길러내고 싶어 했던 차에 테일러를 옥스퍼드에서 더 공부하도록 주선해 줍니다. 좀 복음주의적 분위기가 강했던 캠브리지보다는 고교회풍의 옥스퍼드를대주교가 더 선호했던 탓도 있다고 하지요. 여하튼 옥스퍼드에서 공부를 마친 테일러는 런던 근교의 교회에 부임하는 한편으로 왕 찰스 1세의 채플린으로 임명되기도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미래는 보장된 듯이 보였습니다.

당시 찰스 1세는 11년 동안이나 의회를 열지 않고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던 탓에 청교도들은 극도로 불만에 싸여 있었습니다. 고교회풍의 윌리엄 러드 대주교 역시 청교도들의 증오대상이었지요. 청교도들은 영국에 왕정도 필요 없고 주교제도 필요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내전이 일어났고 청교도 중심의 의회는 러드 대주교를1641년 런던탑에 가뒀다가 1645년 처형합니다. 이어 1649년에는 왕마저도 처형당합니다. 주교제와 기도서는 폐지되고 청교도 중에도 호전적인 집강경파가 의회를장악하고 영국을 주무르게 됩니다. 제레미 테일러 같은 성공회 왕정 옹호자들에게는 너무나 위태로운 시기였습니다. 러드 대주교가 투옥된 이듬해 1642년 테일러는 주교제란 하느님께서 세우신 제도라는 관점의 책을 출판해 청교도들의 미움을 삽니다. 잠깐 투옥된 다음 그는 웨일즈 남쪽에서 8년간 유배생활을 하게 됩니다. 유배 중인 1651년 사랑하는 아내 피비(Phoebe)가 사망하는 아픔을 겪습니다. 하지만 테일러의 역작은 대개 이 고통스러운 시기에 탄생합니다. 유배 후 테일러는 재수감되어 일 년간 옥살이를 치룹니다. 1656년 석방된 그는 재혼하여 아이들을 여럿 둡니다.하지만 가족은 늘 가난했고 떠돌이 생활을 면치 못했습니다.
1660년 왕정이 복고되고 성공회도 이전 모습을 회복하게 됩니다. 고생한 테일러도주교로 임명되어 교구 하나쯤 맡을 법한데 이번에는 이전 저술의 내용이 시비가 됩니다. 그 바람에 그에게는 북아일랜드의 장로교인들로 가득한, 도무지 성공회나 주교따위엔 관심 없는 사람들로 가득한 가난한 지역 교구가 할당 되었습니다. 가난한 변두리 생활, 그것도 신학적으로 수상하다는 비난이 늘 끊이지 않는 가운데였지만 테일러는 그곳을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전에 고생하던 시기에 여섯 아들을 이미 잃었던 그가 유일하게 남은 아들 찰스마저 런던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자 병석에 눕게 되고 며칠 지나지 않은 1667년 8월 13일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제레미 테일러는 타고난 글재주로 다작(多作)을 한 작가입니다. 영어권 최초의 예수전도 테일러의 역작으로 수천 페이지가 달하는 이 책은 복음서 이야기와 묵상, 신학적 담론, 테일러가 직접 쓴 기도문들로 엮어진 책인데 사실 테일러는 청교도들이 기도서 사용을 금하자 기도서에 준하는 책과 예배양식을 만드는 노력의 와중에 이런 책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복음서를 체계적으로 읽고 묵상하며 리듬에 따라 점진적으로 성스러운 생활을 이끌어가려는 것이 성공회의 유산이요 풍모임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테일러의 가장 유명한 저술은 그의 사후 300년이 넘도록 독자가 끊이지 않는 「거룩한 생활의 규칙과 수련」(The Rule and Exercises of Holy Living)과「거룩한 죽음의 규칙과 수련」(The Rule and Exercises of Holy Dying)입니다. 두 책 모두 그리스도인 생활이란 거룩함이 점진적으로 자라는 그런 생활로 묘사합니다. 거룩한 죽음에 관한 책은 사랑했던 아내 피비가 죽고 6개월 뒤에 나온 것입니다. 침울하면서도 부드럽고 살아 있는 신앙을 느끼게 하는 이 책은 오랜 세월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테일러 글의 특징은 빼어난 영적통찰을 늘 실천적인 적용과 섞으려 한다는 점입니다.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서 테일러는 신학적인 이슈를 논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의 관심은 늘 그리스도인이 매일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 신학적사고가 보다 나은 인간적인 세상을 가져올 것인지, 사람들의 실제생활에 이 논의가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이를 통해 신자들이 하느님과 보다 깊은 관계에 들어갈 수 있을지를 그는 늘 염두에 두었습니다. 관념적이지 않고 실천지향, 일상성의 예찬이 성공회 영성의 중요한 면모이거니와 제레미 테일러 같은 분들에게서 물려받은 성공회의유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테일러가 왕정복고 이후에 북아일랜드 변방으로 밀려나게 만든 것도 기실 이 실천적 관심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테일러가 유배생활 중에 쓴 첫 번째 책은 분쟁과 당파성으로 가득한 당대의 분위기에걸맞지 않게 신앙의 관용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도신경이면 교리적으로 충분한데 신경의 해석에 있어서도 서로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는 가운데” 그 외의 문제들은 신앙에 본질적이지 않은 문제로 치부하고서로 관용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국가권력으로 자기네 신앙을 강요
하는 짓 같은 건 하지 않았다는 점을 일깨웁니다. 그러니 힘으로 밀어붙여도 박해하는 자나 박해받는 자 어느 쪽도 더 거룩해지지 못한다는 점을 꼬집습니다. 그러나 관용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시대분위기에서 이 책은 당장의 환영은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테일러는 실제로 받은 대접 이상의 깊이와 내용으로 성공회의 풍모에 영향을 준 인물입니다.제레미 테일러를 읽노라면 우리네 신앙생활에도 유배 비슷한 시기가 있음을 떠올
립니다. 테일러는 그때 많은 것을 잃었지만 깊이를 얻었고 그 열매를 오늘날까지 전해줍니다. 우리는 그러한 시간을 어떻게 맞이하고 무얼 배웠던 걸까요?(이주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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