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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나눔

성공회를 말하기 위한 몇 가지 질문 (성공회신문 710호 논단원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0. 6.

 

조선성공회문장; 현재 대한성공회관구문장. 떡깔나무잎 13개는 조선 13도를 상징/ 성공회 대학로교회 성당 스테인드글라스(김용철 교수작품)에서 부분촬영


                        성공회를 말하기 위한 몇 가지 질문

감사하게도 세상은 넓고 교회는 많습니다. 교회건물이 많은 것은 물론 가지가지 교단과 교파도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성공회는 본교회나 신자의 수가 많은 편은 아닙니다. 작은 교세에 대한 반성의 차원에서 교회성장 방안이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성장을 위해서 제일 먼저 필요한 일은 성공회가 어떤 교회인가를 확인하는 일일 것입니다.  많고 많은 다른 교단 교파와 우리 성공회가 다른 점이 무엇이고 어떤 장점과 매력이 있는지를 우리가 먼저 정직하고 분명하게 소통하고 공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공회의 자긍심을 말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합니다.

많은 이들은 성공회의 자랑을 전례적인 교회인 점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반박하기를 전례라면 로마가톨릭이나 정교회도 훌륭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우리 성공회의 전례신학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전례의 의미, 전례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참된 인식과 자부심을 나누고 있을까요?

많은 이들은 성공회의 자랑을 활발하고 선도적인 사회선교에 둡니다. 다른 이들은 반박하길 이제 사회선교는 복지국가의 몫으로 되지 않았는가 말합니다. 그리고 재력 있는 보수교단들도 활발히 사회선교에 참여하는 현실을 말합니다. 사회복지단체나 국가제도와 다르게 성공회가 하는 사회선교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가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 교회의 사회선교에는 어떤 신학적인 중요성이 있는 것일까요?


어떤 이들은 성공회의 자랑을 모든 신앙의 형태를 포용하고 관용하는 태도에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성공회가 필요하다면 언제든 성공회의 간판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교파적인 집착이 없다는 것과 교회일치운동에 공헌한다는 것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에는 성공회가 영국의 국교회로서, 또 서구 그리스도 교회의 주류로서 가지는 자신감과 여유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성공회야말로 이미 튼튼한 기초 위에 서있는 가장 교회다운 교회라는 자긍심이 들어있는 것이지요. 한국사회에서 아직 작은 규모의 교단인 성공회가 이런 주장을 그대로 하는 것이 과연 유용하고 설득력이 있는 일이 될까요?


어떤 이들은 한국성공회가 진보적이라는 점을 자랑하고 어떤 이들은 지나치게 정치 참여적으로 보이는 점을 우려합니다. 어떤 이들은 평화롭고 점잖은 교회 분위기를 사랑하고 어떤 이들은 교회가 예언자적인 사명을 잃어버린 것 아닌가 걱정합니다. “모든 것이 정치이지만 정치가 모든 것은 아니다”는 경구대로 교회의 사명은 세상의 정치를 인정하되 그것을 초월하는 신앙의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살피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공회 신앙은 정치적인 동시에 탈정치적입니다. 성공회의 태생과 발전이 현실의 민족주의와 사회안정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맞물리는 역사가 있기 했지만, 현실의 당파를 정략적으로 편드는 수준의 정치참여를 성공회는 단호히 거부해 왔습니다.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섬기는 우리 성공회의 신학은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하여 어떤 빛을 비추고 있는 것일까요?


이런 물음들에 대하여 우리는 지금 어떤 대답을 정리하고 있는 것일까요?
스스로 반성의 물음을 던지고 대답을 정리하는 것이 성공회 신학의 과제입니다. 지금 한국 성공회에서 성공회 신학이 우리의 문제를 반영하고 우리의 대안을 모색하는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라도 한 편에는 현장 없는 현학적 신학의 태도가 한편에는 신학무용론적인 태도가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성공회가 가장 교회다운 모습으로 이 땅에서 아름답게 성장하려면 반드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성서와 이성과 전통에 근거한 우리 성공회 사람들의 대답이 풍성하게 찾아지고 정리되고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2009. 10. 4/ 임종호/분당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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