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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선물들

by 분당교회 2019. 5. 1.

2019년 4월 28일 부활2주일 

이경호 베드로 주교

사도 5:27-32 / 시편 118:14-29 / 묵시 1:4-8 / 요한 20:19-31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선물들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분당교회 교우 여러분 위에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분당교회는 금년으로 설립 20주년을 맞이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분당교회를 섬겨 오신 교우 여러분의 헌신과 정성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나라의 봄은 많은 꽃들로 아름답습니다. 다양한 봄의 꽃들을 보면서 나는 지금 어떤 믿음의 꽃을 피우고, 어떤 향기를 드러내고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오늘 복음은 “안식일 다음날 저녁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모두 문을 닫아걸고 있었다.” 는 표현에서 제자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주님을 배반했다는 죄책감, 수치감으로 마음의 문은 굳게 닫았습니다. 이런 마음을 요한복음은 “모두 문을 닫아걸고 있었다.”고 표현합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오시어 ‘평화’를 선물로 주십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이 “평화!”는 - 얼마나 간절히 기다리고 갈망했던 선물인지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주님은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라.”(요한14:27) 고 말씀하셨습니다. 

 

평화 - ‘샬롬’이라는 말은 우리말로 “간밤에 평안하셨습니까?”라는 인사말입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이 이 인사를 나눌 때는 그냥 “안녕하십니까?” 그런 인사가 아닙니다. 이 인사는 지금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하느님의 질서가 이 땅에 실현될 날이 올 것이다. 그 때 우리는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모두가 평화롭게, 참으로 건강하고 온전하게 살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 다함께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고 살아갑시다.” 샬롬은 그렇게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하는 인사입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이 인사는 “이제 너희들이 그렇게 갈망하던 하느님의 평화가 시작되었다”는 선언이고, 내가 주는 평화는 힘으로 지배하고 다스리는 그런 강자의 평화가 아니라 서로를 섬기고 돌보는 가운데 이루어가는 평화라는 것이지요. 

 

주님은 그렇게 평화를 빌어주시면서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십니다. 십자가에서 입은 상처와 아픔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 상처와 아픔을 기억하라는 것이지요. 그 상처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 주시려는 것이지요. 제자들은 그런 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이 구절을 “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꼬리를 흔들었다.” 고 번역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부분은 “그런 주님을 뵙고”라는 표현입니다. 요한복음에는 ‘보다’, ‘보았다’라는 표현은 정말 많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1장은 말씀이 육신이 되셨고, 그런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에게서 하느님의 은총과 진리 그리고 영광을 ‘보았다’고 선언합니다. 우리와 똑같은 몸으로 오신 그 예수님에게서 하느님의 은총과 진리 그리고 영광을 ‘보았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는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소경은 사물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주님을 통해서 눈을 떴고, 보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사람들, 두 눈으로 바로 보고 있다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은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우리 가운데 시력이 나쁜 사람들은 있겠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눈으로 많은 것을 보면서 살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할 때는 얼마나 많은지요? 이 눈으로 보았다고 말하지만 때로 잘못 볼 때는 얼마나 많은지요? 

 

사랑이 없으면 보이지 않지만 사랑의 눈에는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보이지 않지만 믿음의 눈에는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철이 없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철이 들면서 보이는 것들도 있고,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할 때는 보이지 않았으나 욕심을 내려놓으니 보이는 것들도 있고, 보좌사제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관할사제의 눈에는 보이는 것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고 합니다. 이 말은 전에 보았던 예수님을 그대로를 보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예수님에 대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눈이 열리어 밝아졌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주님이 어떤 분인지 더 분명해졌고, 그분이 누구신지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눈이 열리니 마음의 문도 열렸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의 마음 안으로 들어오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주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하나로 묶어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주님을 통해서, 한 몸인 공동체를 이루게 된 것이지요. 그렇게 부활을 체험을 하니 그들은 모두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제자들의 부활체험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제자들은 두려움, 죄책감, 수치스러움이라는 죽음에서 벗어났고,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눈을 뜨고 마음이 열린 제자들에게 주님은 새로운 파송, 소명을 주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 말씀은 너희들이 부활의 은총과 기쁨을 경험했다면 그 기쁨과 감격을 네 안에만 간직하지 말고, 세상으로 나가서 그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이런 파송, 보냄은 오늘 우리들에게 / 분당교회 교우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 체험은 우리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반드시 세상에 나가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그것이 제자들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 홀로 보내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영을 주시어 파견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령을 받으라.” 고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또 다른 은총의 선물이지요. 

 

요한복음의 성령을 파라클레토스라고 말합니다. 파라클레토스 성령은 주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행하셨던 사랑의 삶, 진리의 삶, 생명의 삶을 살도록 격려하고 지지 하는 영입니다. 

파라클레토스 성령은 주님의 일을 하다가 걱정이나 염려 그리고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 우리를 위로하고 힘을 주시는 영입니다. 파라클레토스 성령은 하느님과의 관계는 물론, 다른 사람들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영입니다. 우리들이 주님의 일을 좀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협조자, 중보자, 보혜사 성령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이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파라클레토스 성령께서 너희들의 삶을 이끌어 가실 것이니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분당교회 교우 여러분!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파라클레토스 성령께서 여러분과 분당교회를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오늘 견진을 받는 여러분의 삶도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면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듯이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성령 안에 살면 과거의 옛 성품, 낡은 인간은 사라지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주님께서 행하셨던 그 일들을 하면서 삶의 보람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때로 고난이나 고통을 당할지라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마지막으로 ‘용서“의 선물을 주십니다.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은 당신을 버리고 도망쳤던 제자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를 주님은 용서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심은 우리들을 과거의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미래, 가능성을 위해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허물과 잘못, 실수에 묶어두지 않고 새롭게 변화될 수 있는 존재로 그 가능성을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의 삶을 살라는 말은 우리들 역시 다른 사람들을 그런 변화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존중하며 살라는 말입니다. 이런 용서야말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용서를 경험한 사람은 용서의 은총이 얼마나 큰지를 압니다. 그리고 그런 용서의 은총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용서의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서로의 잘못을 탓하지 말고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하며 살라는 것이지요. 

 

부활하신 주님은 아주 귀한 선물을 주십니다. 첫째 선물은 평화이고, 둘째 선물은 성령이며, 셋째 선물은 용서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두려움과 염려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에게 찾아오시어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인사하시며 평화를 선물로 주십니다. 주님은 당신이 행하셨던 모든 일들을 기억하게 하는 성령, 우리를 위로하는 성령, 우리를 끊임없이 지지하고 격려하는 성령, 우리의 중보자이시고 보혜사이신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서로 용서하여 더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가고, 그 용서로 세상을 변화시키라 하십니다.  

 

여러분 모두 이 은총의 선물을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십시오. 

이 선물은 나에게 주신 것이고, 우리 교회에게 주신 것입니다. 

선물은 고맙고 감사하게 받을 때 선물이 됩니다.

주님의 선물은 함께 나눌 때 더 큰 기쁨과 행복을 줍니다.

이 선물을 이웃과 나눌 때 더 큰 축복이 됩니다. 

 

분당교회가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기쁘고 행복한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교회를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과 축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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