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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천국의 소망

by 분당교회 2015. 11. 1.

천국의 소망


신앙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르고 양심적으로 사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최근 조사된 여론 조사에서는 종교와 종교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신뢰가 급격히 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인들에게서 정의롭고 헌신적인 면보다는 일반인들보다 더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모습들을 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단순히 윤리 도덕적인 측면에서 옳고 그른 것을 가지고 신앙인의 특징을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또 저급한 사고방식으로 신앙을 통해 건강하고 오래 살며 물질적인 ‘축복’으로 행복하게 산다는 것을 말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만일 이런 신앙관이라면 하느님이 개인의 건강과 경제생활을 도와주는 분으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인에게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것은 아마도 천국에 대한 소망일 것 같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분명히 존재하고, 오고 있고, 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주는 기쁨이 신앙인들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죽음이고 죽은 뒤에 과연 하느님 앞에 어떻게 설 것인가에 대한 불안입니다. 죽음은 가장 고독한 길이라 누가 대신 가 줄 수 있는 길이 아니고 나 홀로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이 세상에서 보던 저 푸른 하늘과 산과 나무와 새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과 영원히 이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절망하는 사람과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간직한 사람과는 마치 지옥과 천국의 차이만큼이나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라자로의 죽음으로 마르타와 마리아는 절망했습니다. 그만큼 슬퍼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씀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믿음으로 승화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께서 라자로가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도 빨리 오시지 않고 이미 죽은 뒤에 나타나시자 이렇게 푸념을 합니다.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천수를 누리고 죽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지 못하고 양심적이고 올바른 사람도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죽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예수께서는 왜 이런 억울한 죽음을 그냥 놔두시나... 잠만 주무시는 것 아닌가... 이런 식의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께서는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주변사람들이 애통해 하는 것을 보시고는 비통한 마음이 복받쳐 올라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습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라자로와 별로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가족도 아니고 친척도 아닙니다. 친한 친구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비통한 마음이 복받쳐 올라 눈물을 흘렸다고 하니 예수께서는 슬퍼하는 사람들과의 공감과 자비의 마음이 충만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7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성직자인 존 던(John Donne)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시에서 ‘누구든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다.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은 그만큼 작아지며, 모래톱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다.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땅이 잠겨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의 죽음도 결국 나를 손상시킨다. 왜냐하면 나 역시 인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죽는 것을 세계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으로 표현한 부분에서 예수께서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애통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 앞에서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애통해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예수의 마음이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오늘(11월1일)은 ‘모든 성인들의 축일’입니다. 만성절이라고도 불리었던 이 날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순교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내일(11월 2일)은 모든 별세자들의 날입니다. 성인들이 성인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천국에 대한 소망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비록 박해를 받고 나약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강한 소망으로 천국에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무덤에 갇혀진 라자로를 불러내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풀어주어 가게’ 하였습니다. 영원한 자유와 생명을 주셨습니다. 죽음으로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천국이 멀리 있지 않음을, 이 죽음 같은 세상에서도 천국의 소망으로 살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1월 1일 연중 31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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