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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하늘과 땅의 소통

by 분당교회 2014. 6. 6.

하늘과 땅의 소통


예수께서 탄생하신 성탄은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높고 거룩한 보좌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감시하고 조종하시지 아니하고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버림받은 병자, 세리, 창녀, 어부 등과 같은 낮은 사람들, 작은 사람들을 섬기고 존중하셨습니다. 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 정도가 아니라 하늘이 땅을 섬기는 사랑을 주셨습니다.


반면에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부활 승천하신 것은 땅이 하늘로 올라간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이 죽음과 죄에 사로잡힌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도록 직접 하늘 문을 열고 승천하심으로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동양의 고전인 주역은 우주의 운행법칙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태극기에 그려져 있는 괘의 조합을 해석하여 세상의 기운을 설명하는데 그 중 가장 이상적이고 좋은 괘가 ‘지천태’(地天泰)괘라고 합니다. 이는 하늘이 밑에 있고 땅이 위에 있는 형국입니다. 자연의 형상이 역전되어 있는 모양이지만 하늘의 기운이 위로 향하고 땅의 기운은 아래로 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만난다는 이치입니다. 서로 다가가는 마음입니다. 하늘과 땅이 서로 교통하여 태평하게 됩니다. 이는 역지사지, 즉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라는 금언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왕이 신하와 백성의 처지에 서서 세상을 이해한다면 얼마나 형통하겠습니까? 


(Ascension of Christ, Benvenuto Tisi, 1520) 


반면에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밑에 있는 형국은 자연의 형상과 같지만 서로 상통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늘은 계속 위를 향하고 땅은 계속해서 밑으로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왕이 백성들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하늘과 땅의 역동적인 소통을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늘나라를 이 세상에서 앞당겨 살게 됩니다.


하늘이 땅으로 내려왔는데 하늘만 쳐다보는 것을 교만이라 했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고난 받는 세상의 현실은 외면하고 하늘의 권세만을 바라보고 그 영광만 차지하려 한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멀리하게 됩니다. 현실은 악하니까 도피하려는 신앙적 태도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악한 현실 속으로 오셔서 변화시키십니다.


반면에 땅이 하늘로 올라가는데 여전히 땅만 쳐다보고 있는 것은 태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궁극적인 존재로서 영원한 나라에 임하셨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땅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눈앞의 현실에만 급급하게 되면 천국은 멀어지게 됩니다. 궁극적이지 못한 것을 궁극적인 것처럼 여기면서 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물질과 권세와 명예를 추구하는 우상을 숭배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승천 상황을 기록한 사도행전에서는 예수께서 하늘로 오르시자 제자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 흰 옷을 입은 사람 둘이 나타나서 ‘왜 너희는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니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할 증인으로서 새 출발을 하라는 경고입니다. 정신을 차린 그들은 다시 모여 기도합니다. 정말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성령강림의 역사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변화되어 모진 고난과 탄압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복음을 전파합니다. 그들은 순교하면서도 하느님을 원망하거나 세상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형장에서도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예수께서 부활하셨음을 증거 했습니다. 하늘이 그들의 몸과 마음에 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살았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끔 마음속에 하늘을 간직한 듯한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하늘을 소유했다고 우겨대는 교만한 마음이 아니라 하늘처럼 넓고 환하고 투명한 마음입니다. 하늘엔 구름도 바람도 새도 지나다닙니다. 그러나 하늘은 한 번도 그들을 소유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살게 할 뿐입니다. 


하늘처럼 너그러운 마음의 소유자가 그리운 시대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6월 1 승천후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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