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설교

신실한 믿음, 신실한 종

분당교회 2016. 10. 2. 20:17

신실한 믿음, 신실한 종


예언자 하박국이 활동하던 시대는 이스라엘이 이민족의 침략으로 멸망을 앞두고 있던 때입니다.  하박국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 받는 상황에서 하느님에게 항의를 합니다. “야훼여,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이 소리, 언제 들어주시렵니까? 이 고생살이를 못 본 체하십니까? 보이느니 약탈과 억압뿐이요, 터지느니 시비와 말다툼입니다. 법은 땅에 떨어지고 정의는 끝내 무너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끝내 악인은 심판을 받고 이스라엘에 새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희망을 가지고 마음을 고쳐먹고 끝까지 신실함을 잃지 말라고 하십니다. “의로운 사람은 그 신실함으로 살리라!”


아무 대가나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하느님을 믿을 수 있을까요? 재난과 공포 앞에서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신실한 믿음을 지닐 수 있다면 그야말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고난을 겪습니다만 평생 착하게 살았는데도 가난과 고통이 끊이지를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간혹 이런 신자들도 있습니다. 정말 열심히 기도하고 교회 빠지지 않고 다녔는데도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는지요? 그래서 교회 다니기 싫어졌다는 분도 계십니다. 



하지만 하박국서에 나오는 “의로운 사람은 그 신실함으로 산다!”는 이 한 마디가 고난 받는 사람들에게 주는 하느님의 위로입니다. 내가 양심대로 살고, 내가 신앙인으로서 신실하게 살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통해서 사업이 성공하고, 자녀들 대학 잘 가고, 믿음을 통해서 출세했다면 만세 부르고 좋을 일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머물러 버리면 큰 위험이 닥칩니다. 믿음을 통해서 무엇이든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신앙관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은 보상이 없으면 교회도 하느님도 금방 떠나게 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자신의 목적 때문에 다니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주장만 하게 되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어느 새 신자가 신부님께 이런 소리를 했습니다. “신부님, 교회 신자들은 참 신기합니다.” “왜요?” “일주일 동안 피곤하고 바쁘게 지내고서 주일날 이렇게 교회들을 나오고, 게다가 뭐 생기는 것도 없는데 저렇게 열심히 봉사들을 하니 신기할 수밖에요.”


각박한 세상에서 늘 번뜩이는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살던 사람이 보기엔 교회가 신기하게 보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보이지도 않는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그 안에서 울고 웃고, 때로는 감격하기도 하고, 없는 힘을 얻는 것을 보면 세속에서 볼 수 없는 기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위대한 신앙의 힘이고, 영적인 능력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신앙은 이렇게 세상에서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어버린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고, 사랑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으면서 영원한 진리를 발견하는 신비한 능력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이루어내는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그 영광과 기적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참 여러 부류입니다. 어부였던 사람, 세리였던 사람, 로마를 상대로 독립투쟁을 했던 사람... 가지각색입니다. 아마 그만큼 예수를 따르는 동기도 서로 달랐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다니다 보니까 변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입니다. 왜 예수님처럼 안 될까? 기적을 일으켜서 병자도 고치고, 마귀도 내쫓고, 물 위를 걷기도 하고, 빵도 여러 개 만들어서 여러 사람들 배불리 먹이기도 해서 사람들한테 존경도 받고 따르게 해야 할 텐데 전혀 변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문제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믿음이 부족했다는 것을 발견한 모양입니다. ‘그래, 믿음이 부족하니까 우리한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거야...’ 그래서 예수님한테 부탁을 드립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산만큼 필요하냐? 더 하게 해달라고? 그거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니야. 너희한테 필요한 것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야. 그 믿음만 있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채 뽑혀서 바다에 그대로 심어져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야!” 믿음은 양으로 따질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하지만 신실한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실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해 버리는 일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0월 2일 연중 27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