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선신부님이 지으신 성공회교리해설서<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새로운 나, 우리>에서 옮깁니다)

교회일치를 위한 성공회의 4대 기준

성공회 신앙의 기준이 되는 교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10년마다 한번씩 갖는 세계성공회 주교들의 모임인 람베스 회의에서 1888년 성공회 신앙의 기준을 다음 4개 조항으로 정리했습니다.

구약과 신약 66권을 하느님의 계시된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을 통해 신앙을 고백한다.

세례와 성찬례를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사로 받아들인다.

교회의 직제로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오는 주교, 사제, 부제의 삼 성직을 받아들인다.

성공회는 어떤 교파라도 이상의 4개 조항을 인정한다면 형제교회로서 상호 일치와 협력의 관계를 형성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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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신앙의 3대 기준(권위)

교파마다 자기 교회의 신앙을 분별하는 기준(권위)으로 내세우는 것이 있습니다.

성공회 신앙의 3대 기준은 성서, 이성, 전통입니다.

성서

모든 그리스도교의 유일한 경전은 바로 성서입니다. 성공회 역시 성서 이외의 다른 경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성서 66권(구약 39권, 신약 27권)은 모두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 데 유익한 책입니다(2디모 3:16).

이성

성서가 아무리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이라 할지라도 성서에 기록되어져 있지 않은 부분들에 대해서조차 우리가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우격다짐으로 무조건 믿으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성서에서 말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 인간 ‘이성의 빛’에 호소하여 해석을 시도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감성만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이성은 어느 한 개인의 지적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맞닥뜨린 문제에 대해 공동체 모두가 진리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적 해석의 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전통

성공회는 초대교회 이래로 동서교회가 지켜온 훌륭한 전통을 유산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전통이든 고정된 영원불변의 것이란 없습니다. 전통은 언제든 ‘공동체의 합의’에 따라 새로이 형성되기도 하며, 변화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개인의 독단에 의해서 전통이 형성되거나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거기에는 항상 ‘공동체의 합의’가 따라야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서 전통은 항상 공동체를 일치시키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공회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개인의 주관적 체험보다는 공동체적이고 객관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성향을 띱니다. 말하자면 공동체의 일치가 개인의 특별한 행동으로 인해 어지럽혀져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훌륭한 신앙경험을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개인의 신앙경험이 공동체와 연대할 수 있는 성격의 것으로 승화되도록 이끌어가려는 합의의 마음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전통 속에서 개인의 위치를 더욱 확고히 해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공회는 옛 것을 존중하고 공동체의 합의에 의해 새 것을 받아들여 전통으로 형성해 가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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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선신부님이 지으신 성공회교리해설서<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새로운 나, 우리>에서 옮깁니다)

성공회 신앙전통

성공회 신앙의 3대 특징

위에서 영국 교회의 흐름을 대강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성공회는 독특한 교회의 정신과 특징을 갖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우리가 성공회를 선택한 것은 성공회만의 어떤 독특한 특징과 그것이 자신에게 매력으로 작용한 점도 있을 것입니다. 그 독특한 특징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관용성’(resonable tolerance faith)을 들 수 있습니다.

어떤 교단은 ‘자기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공회는 그러한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이요,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회’가 오직 성공회만이라고 아전인수적인 주장도 하지 않습니다. 성공회 외에도 훌륭한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거룩한 신자들의 모임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신앙의 본질적 차원을 뒤흔드는 것이 아니라면 ‘서로의 다름’은 얼마든지 인정되고 용납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비록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라 할지라도 그들이 역사 속에서 형성해 온 훌륭한 신앙의 유산들은 모두가 배울 가치가 있고, 오히려 그리스도교 신앙을 더욱 풍성히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공회는 ‘오직 우리 성공회만이 진리라고 주장하지 않고, 우리의 가르침은 거의 진리에 가깝다.’ 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성’과 ‘포용력’이 성공회의 대표적인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둘째, 중용주의(中庸, via media)의 정신입니다.

이것은 영국 성공회가 16세기를 전후하여 교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격동을 겪으며 얻은 소중한 역사적 경험의 소산입니다. 중용을 특징으로 내세우는 교회라는 것은, 단순히 양쪽의 중간적 입장이라는 것이 아니라 영국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신구교 서로의 다름이 야기했던 무수한 피 흘림의 역사와 비그리스도교적 태도를 종식시키고, 서로의 다름 속에서도 면면히 흐르고 있었던 ‘서로의 같음’, 그리고 동서교회로 갈라지기 전 초대교회가 간직하고 있었던 ‘그리스도교 일치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분들은, 이 중용의 정신에 대해 비판하며 신교도 구교도 아닌 분명하지 않은 교회라고 폄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공회의 특징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해 본 이들은, 성공회가 신구교의 두 가지 큰 흐름을 충분히 담지하고 있는 훌륭한 전통을 간직한 큰 그릇의 교회라고 수긍을 합니다. 이러한 중용의 정신으로 인해 성공회는 어떤 극단적인 것을 고집스럽게 내세운다거나 어떤 특별한 모습을 보이고자 하지 않습니다. 다만 오랜 역사 속에서 전통으로 형성해 온 신앙의 경험을, 오늘의 현실 속에서 공동체가 공유할 수 있도록 이성적으로 반성해 가며, 또한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여러 사안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배려해 갑니다. 그렇게 해서 하느님의 말씀이 오늘을 위한 복음이 되도록 끊임없이 개혁해 가고 있는 중도주의 교회입니다.

셋째, 모호성(ambiguity)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공회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모호하다고 불평처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왜 쉽게 이해하고 주장할 수 있는 분명한 교리체계를 내세우지 않는지, 왜 모든 사안에 대하여 어느 한편의 선명한 입장을 빨리 결정하지 않는지 답답하다고 하소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성공회의 그러한 성격이야말로 장점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잡다단한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이 현실 속에서 우리는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무엇인가를 결정하도록 요구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안에 대해 섣불리 결정을 내리고 정죄하였다가 그 결과가 뒤집히어 오히려 큰 낭패를 겪는 모습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좀 늦더라도 시간을 갖고 천천히 사안을 다루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그 사안에 대해 빨리 결정하지 못해 모호하다는 비판을 듣더라도 진정으로 생명을 위한 길이 어디에 있는지 천천히 찾아보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비난처럼 이야기하는 모호함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성공회에서 이야기하는 모호성은 결코 현실에 대하여 둔감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을 단죄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진정한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는 속 깊은 태도입니다. 한 편의 입장만을 내세우고, 한 편의 주장만을 강요하는 태도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가 가장 하느님의 뜻에 맞게 해결되는 과정을 위해 오히려 가장 예민한 태도로, 모든 가능성 앞에 겸손한 태도로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며 인내하는 정신입니다. 이것은 점점 다원화되고, 분권화되고, 정보화되어가는 현대에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성공회의 귀한 가능성이 될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이상의 세 가지 주요한 특징을 기반으로 하여 성공회는 동서교회로 분열되기 이전 초대교회와 공의회가 결정한 모든 교리를 지키며, 성서와 성사를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삼고, 학문에 대한 존중, 자국 교회로의 토착화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로마카톨릭처럼 교황제도나 중앙집권기구, 또는 국제적인 교회법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세계 어디에 존재하든 자연스럽게 같은 전통의 교리와 예배의식을 가진 한 몸을 이룬 ‘세계성공회공동체’로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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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선신부님이 지으신 성공회교리해설서<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새로운 나, 우리> 중에서 옮깁니다)


성공회의 역사와 정신

성공회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공교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성공회는 16세기 종교개혁 때에 헨리 8세에 의해서 로마 교황권의 관할과 교리상의 지배에서 분리되어 나온 로마 카톨릭의 아류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로마 천주교에서 분리되어 시작된 교회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프로테스탄트(개신교) 라고 규정될 수도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성공회는 중용의 입장에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양극단을 포용하는 포괄적인 성격을 갖는 역사적이고 세계적인 교회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성공회는 ‘잉글랜드 교회’를 모교회로 하여 그 역사의 뿌리가 중세를 넘어 초대교회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영국의 역사와 함께 복합적으로 성장해 온 교회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성공회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국(United Kingdom)이라는 이름은 17세기 초에 생긴 이름인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정치적으로 연합되어 이루어진 섬 국가입니다.)

성공회를 잘 이해하고자 한다면, 2000년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여야만 합니다. 지금 우리가 그 역사 모두를 배울 수는 없지만 성공회가 어떻게 시작하였고,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그리고 성공회는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이어져 왔으며,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를 알아보고 성공회의 특징과 그 정신을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초대교회의 시작

교회의 탄생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로부터 입니다(사도행전 2장).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지상에 머물면서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40일 후에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의 세례를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마르코의 다락방에 모여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후 10일째가 되는 날은 유다인의 명절인 오순절이었습니다. 바로 그날 제자들 위에 성령이 강림하시고, 그 때부터 제자들은 강력하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복음 전파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된 사람의 모임(교회)은 점점 커지게 되었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며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교회는 사도들에 의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소아시아, 그리스, 시리아, 북아프리카, 그리고 로마에도 전파되었습니다. 물론 이 시대는 로마의 박해를 피해 숨어서 은밀히 전도활동을 펼쳐 나가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도성’을 기준으로 하는 주교 중심의 교회발전

오순절 이후 예수님의 직제자들이 활동하던 시기가 지나가고, 2, 3대 제자들이 전도활동을 하면서, 교회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직제자들이 죽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이단적 가르침들이 일어나게 되었고,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각 지역의 주교들은 사도들의 처음 가르침을 이어 받은 ‘사도성’을 기준으로 삼아 ‘정통과 이단’을 판별하여 교회의 가르침을 지켜나가려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의 순교 이후 사도성의 계승과 정통성은 각 지방의 주교에게로 전수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처음부터 주교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주교 중심의 교회는 큰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되어, 예루살렘, 안티옥, 에페소, 알렉산드리아, 카르타고, 그리고 로마로 그 세력이 퍼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특히, 313년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승인하자 이 때부터 교회는 로마제국의 확장과 함께 급속도로 발전되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권도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옮겨지게 되고, 교회의 직제와 예배 양식도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 공인과 로마교회의 위상강화

초대교회 역사 속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 두어야 할 사실은 교회의 중심이 처음부터 로마였던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교회 시작의 중심은 예루살렘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각 지방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그 세력권이 퍼져 나가면서 그 지역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이나 혹은 로마 주교가 계급적인 수좌 역할을 한 것도 아니고, 각 주교가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사도들로부터 이어온 정통의 카톨릭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협력하는 관계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승인하면서 로마의 세속적 권력이 교회 안에 침투해 들어와 교회의 중심이 로마로 이동되고 맙니다. 나중에는 로마의 주교가 성서에도 그런 호칭이 없는 ‘교황’이 되고 맙니다. 4세기 말에 있었던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 승인은, 긍정적인 면에서 보면, 그리스도교의 전파를 위한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부정적인 면에서 보면 그리스도교 전승이 로마의 세속적 권력과 문화에 의해 희석되어진 암울한 시절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순수한 초대교회의 카톨릭 신앙이 성공회에서는 어떠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이어져 왔습니까?


초대교회의 잉글랜드 전래

글래스톤베리의 한 작은 마을에는, 수령이 이천년에 달하는 나무가 서 있습니다. 이 나무는 오늘날 영국 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나무이기에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대한 아름다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을 경험한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은 전도여행을 시작하여 마침내 잉글랜드의 이 작은 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최후만찬 때 사용한 성작聖爵을 항상 가지고 다녔고, 자신이 도착한 이 마을의 언덕에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짚고 온 지팡이를 꽂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지팡이가 땅에 뿌리를 내려 지금까지 든든히 서 있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곳에 서 있는 나무가 예루살렘 지역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와 같은 품종의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슬러 올라가보면 예수님이 쓰셨던 가시나무도 바로 이 품종의 나무였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전설을 뒷받침할만한 자료는 없지만 참 아름다운 전설입니다.

그리스도교가 언제 잉글랜드 땅에 전해졌는지에 대한 연대는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저 사도 바울이나 필립 또는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전했다는 전설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로마와 초대교회의 역사적 문헌을 통해 추측해 볼 때, 잉글랜드 땅에는 초대교회 시절부터 교회와 그리스도교 신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타키투스의 연대기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의 연대기(115년경 작성)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로마 황제 클라디우스가 잉글랜드 원정에 파견한 장군 중에 프로챠스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원정을 마치고 로마로 개선하여 온지 얼마 뒤에 그의 휘하 부대에서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부하 장교의 부인으로 잉글랜드 사람 폰포니아라는 여인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죄목으로 고발을 받아 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여인은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이유는 프로챠스 장군 자신이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기록한 타키투스는 이 일이 기원 후 56년경이라고 명백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그 여인은 잉글랜드 원정에서 데리고 온 여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1세기 중엽에 이미 잉글랜드에는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어 있었고, 그리스도인이 있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200년경 유다인을 공격했던 터툴리안(Tertullian)의 소책자와 240년경 오리겐이 쓴 글에서도 잉글랜드에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는 기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를르 공의회

313년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후, 314년에 그리스도 교회가 있는 모든 지방의 주교들을 소집하는 ‘아를르 공의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공의회는 주교들의 회의를 뜻합니다. 이 공식적인 주교회의에는 잉글랜드에 있는 교회를 대표하여 세 분의 주교가 한 분의 사제와 한 분의 부제를 데리고 공식적으로 참석한 것이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비록, 325년 니케아공의회에는 참석치 못했지만, 성 아타나시우스는 잉글랜드 교회가 니케아공의회의 결의를 받아들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정황을 통해 살펴볼 때 잉글랜드에는 적어도 1세기 중엽 경, 즉 사도 베드로, 요한, 바울로가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을 때 복음의 씨가 뿌려져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일정 조직을 갖추게 되었으며, 4세기 초에는 ‘공의회’에 주교들을 참석시킬 정도로 이미 많은 성장을 한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304년경 로마의 디오클레시안 황제의 박해기간에 순교한 성 알반이 기록으로 남겨진 최초의 그리스도인이지만, 이미 그 이전 초대교회부터 교회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잉글랜드 땅에 대한 초대교회 시절의 복음 선교를 강조하는 이유는 성공회의 시작이 로마교회로부터 기원한 것도 아니고, 로마교회의 아류도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초대교회 때로부터 면면히 잉글랜드 내에는 그리스도교가 형성되어 발전해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잉글랜드 토착교회(켈틱교회)로서의 성장

초대교회 시절부터 잉글랜드에 선교된 교회는 7세기 초까지 박해 없이 독자적으로 북서부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합니다. 4세기 말에서 6세기 말까지 잉글랜드 토착교회는 나름대로 활발한 전도활동을 펼쳤고, 수도원 운동을 일으켰으며 또한 당시 켈트족의 문화를 수용한 이른바 ‘켈틱영성’이라는 귀한 전통을 갖게 됩니다. 성 니니안, 성 패트릭, 성 콜롬바 등의 인물들은 바로 이 시기에 활약한 분들입니다.


로마교회의 선교사 파송과 성공

5세기 무렵 잉글랜드에 대한 로마의 통치가 끝나면서 앵글로-색슨족의 침입이 시작되었습니다. 597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로마의 수도사 어거스틴(참회록을 쓴 교부 어거스틴이 아닙니다)과 40명의 선교단을 잉글랜드에 파견하여 새로이 선교를 시작합니다. 이 선교단이 도착한 곳이 잉글랜드의 켄트 지역인데 당시 켄트 지역을 다스리던 왕의 도움으로 기대 밖의 선교 성과를 거둡니다. 이렇게 해서 성장하기 시작한 잉글랜드 내의 로마교회는 앵글로-색슨 교회로서 점차 세력을 넓혀가게 되었고, 기존의 잉글랜드 토착교회인 ‘켈트교회’와의 사이에 초대교회의 전승을 지켜나가는 데 있어서 갈등과 마찰을 빚게 되었습니다.


휘트비 종교회의

633년 오스위 왕은 휘트비 종교회의를 열어서 잉글랜드 토착교회와 로마교회의 통일을 이루게 합니다. 내용적으로는 토착적인 켈트교회 대신에 로마교회의 관할과 전통을 따르기로 한 이 회의의 결정으로 인해 비로소 잉글랜드에 있는 교회는 로마교황청과 연관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대륙과 더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어 문명화에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7세기 이후 잉글랜드에 있는 교회는 로마교회에 속하게 되어 교황의 관할을 받으며, 중세시대 교회의 특징을 공유하게 됩니다. 8세기 잉글랜드의 학문수준은 상당한 수준이었는데, 몇 몇 성직자들은 대륙에서 학자와 선교사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뒤 덴마크의 침입을 받아 많은 수도원이 파괴되면서 학문이 약화되기도 하였습니다. 10세기 들어 웨식스 왕들이 잉글랜드의 정치적 통일을 이루자 교회 역시 개혁되기 시작했고, 11세기 중엽 노르만족이 잉글랜드를 정복하자 잉글랜드는 라틴계 유럽 문화에 보다 가까워졌습니다. 11세기 교회사적 인물로는 캔터베리의 대주교였던 성 안셀름이 유명합니다. 그는 「모노로기온」과 「프로로기온」을 저술하여 하느님을 존재론적인 이론으로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하느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속죄론을 서술한 그의 유명한 책입니다.


토마스 베케트 대주교의 순교와 존 위클리프

12세기 말 잉글랜드 내에서 왕권과 교황권의 갈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발생합니다. 이른바 ‘대성당의 살인’ 으로 유명한 토마스 대주교의 순교가 그것입니다. 왕과 대립하다가 측근에 의해 암살당한 대주교의 순교로 인해 잉글랜드 내에서는 오히려 로마 교황의 영향력이 강해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잉글랜드에 있는 교회들 역시 중세 후기의 특징인 종교적 불안정을 공유하게 됩니다. 14세기 종교개혁가이며 신학자인 존 위클리프는 교황의 권위에 도전한 혁명적인 비판자였으며, 성서를 모국어인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위클리프는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헨리 8세의 로마교회와의 단절(16세기)

중세 로마교회의 부패로 인해 대륙에서는 종교개혁의 불길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16세기에 영국의 헨리 8세는 정치적인 동기로 1519년 로마교회와의 관계단절을 선언합니다. 그것은 왕세자생산과 관계된 문제인데,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아라곤의 캐서린 왕비와 헨리 8세의 이혼을 승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에 왕세자생산은 한 왕조의 존속과 관계된 문제였으므로 의회는 1534년 왕을 돕기 위해 잉글랜드 교회의 최고 수장으로 헨리 8세를 인정함으로서 로마 교황청과 결별을 시도합니다. 그래서 살아서나 죽어서나 신앙을 버리지 않겠다던 헨리 8세의 이같은 결정은 또 다른 교회를 만들기 위한 신앙적 동기로서 발생한 종교개혁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는 비록 로마교회와는 결별하였지만, 여전히 잉글랜드의 교회가 카톨릭교회로 남아있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해 잉글랜드 내에서 로마교황의 정치, 경제, 사회적 영향력을 끊어내고 잉글랜드의 국력을 더욱 강화하려는 다분히 정치적, 민족적 동기에서 행해진 것이었습니다. 잉글랜드 내에서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로마교회의 간판을 내리고 잉글랜드의 것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헨리 8세가 로마교회와의 단절을 시도할 만큼 성장한 잉글랜드 국민이 지닌 국민국가주의 의식이었습니다.


에드워드 6세 치하의 종교개혁

대륙에서 발생한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으며 신앙적인 내용에 있어서 로마교회로부터 벗어나려는 개혁은, 헨리 8세를 계승한 에드워드 6세 때 이루어집니다. 에드워드 6세는 제위 6년 동안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받아들였습니다. 토마스 크랜머 대주교의 주도로 이루어진 개혁의 과정에서 저항하던 많은 로마카톨릭 교도들이 희생당하기도 했습니다.


메리여왕의 로마교회로의 회귀

1553년 에드워드 6세가 요절하자 그 뒤를 이어 이복동생인 메리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캐서린 왕비의 딸로서 열광적인 로마카톨릭 신자였습니다. 메리는 여왕이 되자 지금까지 개혁이 진행되어 온 교회의 모습을 다시 로마교회로 되돌려 놓으려 했습니다. 때문에 교회는 또 다시 크나큰 희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피의 메리’라는 별명이 의미하듯 이번에는 프로테스탄적 개혁을 추진했던 사람들의 숱한 희생이 있었습니다.

희생자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다 믿음을 지킨 ‘순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사람을 구원하자는 종교가 극단적인 입장을 고집하면서 도리어 서로를 향해 살육을 반복했던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 의한 성공회 확립

메리의 뒤를 이어 1558년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군주로 유명합니다. 여왕은 종교가 야기하는 국론분열과 살육을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것은 ‘중용과 포용의 정신’으로써 영국의 종교개혁을 마무리 지으며 ‘성공회’의 기틀을 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시절 성공회는 국교로 확립됩니다. 이것은 프로테스탄트와 로마카톨릭 사이의 양 극단적 대립을 극복하는 잉글랜드 상황 내에서의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잉글랜드 교회가 외국, 특히 로마교황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수장령, 통일령, 무적함대, 청교도와 같은 말을 여러분은 한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것들이 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시절에 생긴 일들과 관련 되어있습니다.

한편, 로마교황청은 잉글랜드의 국교를 저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였지만 결국은 실패하였는데, 결정적으로는 잉글랜드의 해군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해 버린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잉글랜드는 세계적인 대국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⑬ 청교도 혁명과 ‘고교회’ 시대 (17세기)

국교회로서의 성공회 확립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 내에 종교적인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잉글랜드에 있는 교회는 정치적인 역학관계와 맞물리며 크롬웰에 의한 ‘청교도혁명’(1642-1651) 시대를 거치고, 또한 왕정복고를 통하여 고답적인 로드 대주교에 의해 로마교회와의 유대를 회복하려는 고교회적인 시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산업혁명기와 요한 웨슬레의 복음주의 운동(18세기)

대영제국의 발전과 더불어 성공회는 전 세계로 확산됩니다. 그러나 영국국교회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적인 변화의 요구에 그렇게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 등장한 인물 가운데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요한 웨슬레 신부가 있습니다. 그는 직접 거리로 나가 복음을 선포하여 민중들 속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를 중심으로 한 ‘복음주의 운동’이 훗날 또 하나의 성공회 전통으로 더해져 갔던 것입니다. 이 복음주의 운동은 종교개혁기를 거치면서 성공회 안에 흐르고 있는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성공회 사제이기를 원했던 요한 웨슬레의 의도와는 달리 추종자들은 이후 오늘날의 ‘감리교’를 세워 분리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요한 웨슬레의 영향력은 성공회 내에 ‘복음주의’ 라는 값진 유산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옥스퍼드 운동’을 통한 교회전통의 재인식(19세기 중엽)

국가 권력에 예속되는 국교회로 안주하기를 거부했던 옥스퍼드 운동은 성공회의 카톨릭 유산을 강조한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교회의 전통과 예전과 성사를 중시했는데, 이는 특히 한국교회의 성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한국에 선교사로 오신 분들이 바로 이 옥스퍼드 운동을 통한 이른바 ‘고교회(High Church)’에 속한 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18세기의 복음주의 운동이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유산의 강조라면, 19세기 옥스퍼드 운동은 카톨릭 유산의 강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유산은 성공회 안에 지속적으로 존재하여 각각 고교회파(High Church)와 저교회파(Low Church)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세계 성공회 공동체의 형성과 교회일치운동에의 기여

오늘의 역사 속에서 성공회는 더 이상 영국의 국교회가 아닙니다. 성공회는 전 세계에 널리 퍼져있고, 각기 관구로서 독립되어 있습니다. 로마교회처럼 교황제도나 중앙 집권제도를 택하지 않고 각각 독립된 지역교회들의 상통이라는 형식으로 ‘세계성공회공동체’(Anglican communion)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본질이 ‘개교회, 교무구, 교구, 관구, 세계성공회’ 라는 다양한 차원에서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고민할 수 있고, 그러한 고민과 결정이 각 지역의 특성과 현실을 반영한 ‘자율적인 협력’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미 있습니다.

아시아 쪽에서는 대부분의 성공회가 다른 교파에 비해 나중에 선교되어 교세가 작은 탓도 있지만, 세계성공회공동체에 대해 바른 이해를 갖게 되면 성공회가 본질적으로 교회사에서 간직해 온 풍부한 전통과 카톨릭 교회로서 지녀온 그 의미와 역할에 대해 결코 평가절하 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독특한 역사와 경험을 통하여 양극단을 피하고 중용과 다양성 속의 일치를 지향하는 성공회 정신은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윌리암 템플 대주교 등이 교회일치 운동의 선구자적 역할을 해내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성공회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전체적으로 다룬 이유는 성공회의 보편성(카톨릭)이 공간적인 차원과 함께 시간적인 차원에서도 구현됨을 살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성공회는 2000년의 교회 역사를 통하여 어느 특정 인물이나 지역, 시대에 제한된 신학이나 사상을 유일무이하게 배타적으로 내세우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영국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의 여러 경험을 보편적 신학과 사상으로 정리해 내어 하느님의 진리에 가깝도록 끊임없이 ‘변화하고 개혁해 가는 교회’로 존재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회에는 ‘초대교회의 믿음’과 ‘켈트교회의 영성’, 그리고 ‘로마카톨릭 교회적인 전통’과 ‘개신교적인 복음주의의 열정’이 함께 어우러져서 굳어진 정체성이 아닌 다양성 속에 일치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고착된 정체성이 아니라 진리를 위해서 개혁하고 변화해 가는 과정 속에서 성공회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분히 정치적인 고려에 의해 진행된 종교개혁의 과정 속에서 형성된 교회였지만 분명히 하느님의 섭리 가운데 탄생한 교회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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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는 예전적인 교회입니다.
그래서 성공회 예배 안에는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성공회 예배 시에는 아래 3권의 책을 사용합니다.

<성서>
교회력에 따라 규칙적으로 읽어가며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합니다.

<공동기도서>
모든 예배의 순서와 시편, 일상 기도문이 들어 있습니다.

<성가>
찬공가의 전례곡이 들어가 있습니다.

성공회 예배는 장엄한 대 예배에서 평범한 예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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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따라 신앙의 해석에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습니다만, 적어도 아래와 같은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성삼위일체>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방식에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가 있습니다.

성부이신 하느님
오직 우리 인류를 위하여 선하시고 무한하시고 전능하신 창조자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성자이신 하느님
하느님과 인간을 하나되게 하는 구세주로서, 그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은 우리의 죄와 죽음의 속박으로 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성령이신 하느님
성령은 우리안에 신비롭게 살아 움직이는 하느님의 사랑의 힘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를 감화하여 거룩하게 합니다.

<구원>
- 구원이란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떨어져 있는 관계가 끝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을 말합니다.
- 구원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가 얻게 된 것입니다.
- 그래서 모든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증언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구원을 세상으로 가져가야 합니다.

<교회>
교회는 그리스도의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면서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모든 세례받은 사람들이 모두 교회의 회원입니다.

하나이요 -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한 몸입니다.
거룩하고 - 성령이 교회와 교인들 안에 함께 합니다.
공번되고 - 모든 시대와 장소와 사람들을 위한 신앙을 간직하고 있는 보편적인 교회입니다.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제를 계속 이어가는 교회입니다.

<예배>
- 하느님의 사람에 대한 기쁜 응답입니다.
- 구원에 대한 희망의 표현입니다.
- 하느님을 찬양하며 하느님으로부터 힘과 용서를 얻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 다른 믿는 사람들과 신앙을 함께 나누는 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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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성서 안에 있습니다.

신약성서와 구약성서는 하느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증언하는 책입니다. 성서를 통해 이 세상에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하느님 한분 뿐임을 알게 됩니다.

또한 성서는 신앙과 하느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의 표본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세상을 하느님의 사랑 가운데서 진실되고 의롭게 살아가기 위해 성서에서 그 길을 찾습니다.

2) 이성

하느님의 심오한 진리를 깨닫게 해줍니다.

성공회는 이성의 판단을 무시하고 맹목적 신앙해석이나 실천만을 강요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오 히려 이성을 통해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성서의 안내와 이성을 배제하지 않는 진실한 기도를 통하여 도덕적 결단에 이르고 이 결단에 따라 행동하는 신앙생활을 하고자 노력합니다.

3) 교회의 전통

전통은 귀중한 신앙적 유산입니다.

교회의 전통은 우리들이 성서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한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신앙적 유산들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그러므로 전통을 통해 우리는 보다 생동감있고 튼튼한 신앙을 간직하며 우리의 후손들에게는 훌륭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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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성공회 가족은 164개국 430개 지역에 걸쳐 있습니다.
그 리고 신자수는 약 1억명 정도됩니다. 10년에 한번씩 열리는 '세계성공회주교회의'를 통해 열리는 우리는 서로가 한 공동체의 일원임을 확인하고 있으며, 3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세계성공회협의회'를 통해 선교적인 유대와 협력을 다지고 있습니다.

성공회는 "~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 느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이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안내할 뿐입니다. 성공회는 각자가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스스로 해야할 일을 마련해 나가도록 하는 교회입니다. 무엇을 강요한다는 것이 때로는 올바른 신앙을 해칠 수도 있으니까요.

성공회는 "민주적 절차"를 중요시하는 교회입니다.

성 공회는 성직자나 교회의 직책을 맡은 소수의 신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든 교인이 한마음으로 참여해서 교회를 운영합니다. 그래서 성직자를 제외한 신자대표를 뽑는 절차는 철저히 민주적 원칙을 지킵니다. (2년마다 선거를 통해 교회위원을 선출합니다.)

성공회는 "각 지역의 문화적 전승"을 존중하는 교회입니다.

성 공회는 그 교회가 있는 지역의 문화와 전통안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서양사람으로부터 기독교를 전해받았다 해서 서양사람과 같은 언어나 풍습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와 전통안에서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교회가 되고자 합니다.

성공회는 "하나됨을 지향"하는 교회입니다.

성 공회는 "이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의 역사와 전통안에 보존되어 온 훌륭한 유산을 계승하며, 아울러 새로운 신앙적 발견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성공회의 모습 속에서 구교와 신교의 훌륭한 점들이 다양하게 살아 있습니다. 이를 통해 세상에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진 여러 교회와 다양한 신앙형태들을 모두 포용함으로서 교회 일치의 정신을 구현하는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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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만 보아서는 모릅니다.

우리나라에는 기독교인이 4명 중 1명 꼴로 매우 많습니다. 이렇게 많은 기독교인이 있음에도 교회가 사회에 참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이것은 진실로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실천하는 기독교인이 적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참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요?

참 기독교인이 되면...

'굳건한 반석 위에 세워진 집'과도 같이 흔들리지 않고, 살아갑니다.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죠.

'세상 풍파를 이기며' 삽니다. 십자가의 고난 뒤에 영광의 부활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풍파는 결코 우리를 꺽을 수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진실로 자신을 위하는 사람은 바로 이웃을 몸바쳐 사랑하는 사람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대한성공회 분당교회는

굳건한 반석위에 세워진 집과도 같이, 세상풍파를 이겨내고 서로 사랑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분들을 위해 길잡이가 되고자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나눔으로 시작되며, 섬김으로 채워진다는 것을 배워 이를 조금씩이나마 실천해 가기 위한 노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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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하는 보편교회(Reforming Catholic Church)로서 개신교를 사랑하고 천주교와 정교회를 존중합니다.

성공회는 성서를 최고의 권위로 삼되 전통과 이성을 존중합니다.

성공회는 독선적이거나 극단적이지 않고 중용의 길을 걷습니다.

성공회는 획일도 분열도 아닌 다양성 속의 일치를 지향하며 민주적인 합의를 존중합니다.

성공회는 배타적이지 않고 이해하며 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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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skhu.ac.kr/home BlogIcon 대나무 2007/08/31 14: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테터툴즈를 사용중인 성공회대 학생입니다. 테터툴즈 홈페이지에서 보고 반가운 마음에 찾아왔습니다. 저도 테터를 이용하여 학내 구성원들의 메타 블로그를 운영 중입니다 (blog.skhu.ac.kr) 방문해 주시고 '성공회 대학교' 링크 밑에 '성공회대 블로그 커뮤니티'링크 걸어주심 감사드리겠습니다. ^^

  2. Favicon of http://blog.skhu.ac.kr/home BlogIcon 대나무 2007/08/31 14: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제가 아는 다른 성공회 교회 블로그가 있는데...
    성공회 항동 교회에 다니시는 분이 운영하시는 블로그 입니다.
    http://blog.dreamwiz.com/narachazm
    전국의 성공회 교회가 블로그를 만들고 이 블로그를 메타 블로그로 엮는 것도 멋진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이 블로그가 분당교회 신자님들과 예비신자님들의 진솔한 소통의 창구가 되시길 바랍니다. ^.*

    • Favicon of http://www.skhbundang.or.kr/ BlogIcon 분당교회 2007/08/31 1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 반갑습니다..
      대한성공회 블로그스피어 ^^ 멋진 일이죠.. 학교에서 하긴 힘든 일이실 것 같고 교구차원에서 해야할 것 같은데.. ^^ 하여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

      서로 자주 들리며 격려하시죠.. ^^

  3.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montreal florist 2009/10/10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읽었네여

    • Favicon of http://viamedia.tistory.com BlogIcon 임종호 2009/10/11 0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결실의 가을에 모든 일에 풍성한 은총의 열매를 누리시길 빕니다. 님의 꽃향기가 전해지는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