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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려면?

by 분당교회 2018. 12. 10.

2018년 12월 9일 대림 2주일

김장환 엘리야 신부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려면?


기독교는 다섯 가지 신앙으로 구성됩니다. 창조신앙, 성육신신앙,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 임마누엘신앙, 종말신앙입니다. 성공회는 성찬예배 중에 십자가와 부활, 종말의 신앙을 신앙의 신비로 고백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신비를 선포합니다 :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사순절과 부활절이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을 굳건히 하는 절기라면, 대림절은 종말 신앙을 점검하는 중요한 절기입니다. 하느님의 언약 중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단 하나의 약속이 예수의 재림이기 때문입니다. 


종말 신앙으로 충만했던 초대교회 신자들은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마라나타 -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소서! 오늘 2독서를 보면, 사도 바울로가 필립비 교우들을 위해 기도한 내용이 나오는데, 종말에 연관된 기도입니다. 10절 ‘순결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게 되기를’  


여기서 ‘그리스도의 날’이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다른 서신에서 이런 말씀을 합니다. 2고린토 5:10,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가는 날에는 우리가 육체에 머물러있는 동안에 한 일들이 숨김없이 드러나서 잘한 일은 상을 받고 잘못한 일은 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순결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가는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서신 필립비서가 말합니다. 11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올바른 일을 많이 하여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도록’ 9절, ‘참된 지식과 분별력을 갖추어 가장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가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날’, 즉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은 구약에서 예언자들의 선포에도 나옵니다. 오늘 1독서 말라기 3장 2절을 보십시오. ‘그가 오는 날, 그가 나타나는 날’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날을 준비하기 위하여 특사가 온다는 예언합니다. 말라기 3:1, “보아라.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 그 특사가 엘리야라고 합니다. 3:23, 이 야훼가 나타날 날, 그 무서운 날을 앞두고 내가 틀림없이 예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루가는 주님의 천사가 세례 요한의 아버지 즈가리야에게 한 말을 기록하면서, 그 특사가 세례 요한이라고 소개합니다. 루가 1:17, “그가 바로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보다 먼저 올 사람이다. 그는 아비와 자식을 화해시키고 거역하는 자들에게 올바른 생각을 하게 하여 주님을 맞아들일 만한 백성이 되도록 준비할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한 준비 작업이었습니다. 4-5절,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높은 산과 작은 언덕은 눕혀져 굽은 길이 곧아지며 험한 길이 고르게 되는 날,” 


이것은 마음의 밭을 고르게 하는 작업입니다. 이를 위해서 세례 요한은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를 선포합니다. 강퍅한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와서 물로 세례를 받으며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준비를 합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예수님을 통한 참된 구원을 위한 발판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6절)는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 앞에서 주님의 날을 바라보며 살아간 세례 요한의 삶을 소개하며,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이 보여주는 세례 요한의 삶의 대표적인 특징은 2절 후반, ‘광야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광야’란 하느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서 그분의 음성을 듣는 장소를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말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왕으로 섬기고 그분의 통치 아래 사는 하느님 나라 백성의 삶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란 바로 하느님의 통치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다스림 아래 살아갈 때 하느님이 그에게 허락한 인생을 가장 존귀하고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느님이 주신 소명에 따라, 회개를 선포하고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특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여인에게서 난 자 중에 가장 크다는 칭찬을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의 다시 오심으로 완성될 하느님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존귀하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기 원한다면, 세례 요한처럼 광야로 나아가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속의 한가운데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내 욕망 내 생각, 그리고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사탄의 음성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세상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광야는 어디일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6:6, “너희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여기서 ‘골방’을 어떤 특정한 거룩한 장소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하느님과 더 가깝게 느껴지는 성소가 있습니다만, 골방은 하느님하고만 교제하는 시간을 말합니다.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하느님 앞에 머무를 때 성령 하느님께서 나의 생각과 마음을 다스리십니다. 참된 지식과 분별력이 풍성해집니다. 가장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가려낼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됩니다. 하여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올바른 일을 많이 합니다. 떳떳하게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대림절기는 골방을 잃어버린 여러분을 다시 골방으로 초대하는 하느님의 은총의 시간입니다. 저는 지난 한 주 대림절기 매일기도 덕분에 더 많이 골방에 들어갈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지난 한 주간 골방에 머무르며 오늘 2독서 필립비서 5절의 말씀이 우리 교회를 향한 주님의 기대라고 느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한 첫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복음을 전하는 데 협력해 온 것을 나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도 바울로가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 여행을 다니는 동안 한결같이 협력한 교회가 필립비교회입니다. 하느님은 성공회 분당교회가 필립비교회처럼 이 시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선교에 최선을 다해 협력하고 헌신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지난주일 김선일교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이미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있든지, 방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이미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역량 부족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선교 사업에도 힘껏 협력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올해도 성탄절기헌금을 나눔의집, 노숙인 사역에 보내려고 합니다. 


월세교회라는 우리 형편이 있어 전액을 보내지 못하고 1/3만 보내는 아쉬움이 커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느님의 선교에 협력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 하느님께 얼마나 큰 기쁨이 될지 감사할 따름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 나가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며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며 존귀하고 위대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모두 세례자 요한처럼, 골방으로 들어가십시오. 하여 가장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올바른 일을 많이 하는 위대하고 존귀한 신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순결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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